스딸린체제의 한인 강제이주
한국사람들이 카자흐스탄에 처음 방문할 때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신기하다"라고 합니다. "뭐가 신기하세요?"라고 물어보면 사람들이 다양하게 생겨서 신기한다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바로 그 순간은 카자흐스탄은 어떻게 다문화 나라로 된 것인지, 왜 혼혈인가족들이 많은지, 왜 125개 민족 거주하고 있는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면 이런 이야기가 한국사람들에게 남북관계에 대하여 물어보듯이 현지인들이 똑같이 민감하고 슬픈 주제입니다.
현재는 카자흐스탄에서 125 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 중 7 개는 카자흐인, 러시아인, 우즈벡인, 우크라이나인, 우즈벡인, 위구르인, 타타르인과 독일인들입니다.
그러나 1920-1940년 스딸린체제의 거주하고 있는 지역으로부터 어마어마한 민족들이 카자흐스탄 및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비워진 지역으로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지도를 보시면 이해가 더 잘 될 것 같습니다.
스딸린체제에 의해 1928-1936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및 벨라루스지역으로부터 약 3십6만 명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또한 현재 고려인라 불리는 구 소련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이 1937년 러시아극동지역으로부터 카자흐스탄 및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당시부터 카자흐스탄 강제 이주 과정이 시작하였습니다.
1941년8월28일날은 소베이트 명령에 의해 볼가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독일인들 1백십2만 명이 강제 이주되었으며 그 중 4십2만 명은 카자흐스탄에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1942년은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지역, 크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지역으로부터 그리스인 2만4천 6백7십 명, 2만 9천 5백5 명 다른 민족들이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제 2 차 대전 때 스딸린체제의 공통 승리를 위하여 모든 민족들이 힘을 합치고 용기와 영웅주의를 보여주는 당시에 자기 민족에 대하여 대량으로 학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최초로 강제 퇴거 희생자는 러시아극동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들이 되었습니다.
1937년 러시아극동지역으로부터 1십만 명 고려인이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폴란드인, 핀란드인, 쿠르드족, 크림 타타르인, 터키인, 그리스인, 서양 벨로루시인과 서양 우크라이나인, 리투아니아인들 및 기타 민족들이 강제 퇴거되었습니다.
1937-1944년은 카자흐스탄으로 전체 1백7십4만 명이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강제 이주 이후 최근 몇 개월 동안 질병과 기아로 인해 수천명이 사망하였습니다.
또한 새로운 거주지에서 떠나기 금지하였으며 본 규정을 위반한 사람들을 20년 강제 노동으로 처벌하였습니다.
따라서 심한 도덕적 골절과 물리적 고통으로 생존하기가 엄청 힘든 때였습니다. 이와 같이 현지인의 지원 및 동정이 그 당시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부끄럽고 끔찍한 사건들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1950년도 강제 이주 민족들에 대한 자강과 자립, 개화 과정이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체첸인, 잉구쉬인 및 기타 민족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게회를 받았습니다.
정말 슬프고 아쉬운 것들도 많고 부끄럽고 아픈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이번에 써보려고 시도해봤지만 잘 설명 해 드릴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인터넷으로 찾지 말고 도서관에서 한번 가서 관련 책들을 빌려 보시는 게 좋습니다.
읽어봐 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는 평화롭게 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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